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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대한원조 프로그램으로 신축된 파주여상과 건설되는 금촌도립병원 / 여학생과 배구하는 미군

items/R2 DMZ&판문점/S2 DMZ&MDR/76. 미군대한원조 프로그램으로 신축된 파주여상과 건설되는 금촌도립병원 , 여학생과 배구하는 미군 .md

이 영상은 1954년 3월 AFAK(대한군사원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파주 금촌 파주여자상업학교와 금촌 민사병원 건설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영상에서 파주여상 교사는 이미 건축한 상태이다. 한 장면에는 운동장에서 학생들이 미군 관계자와 함께 배구하는 장면, 학교 전경 등으로 구성된 영상이다. 1954년 금촌민사병원 1차 완공 이후 추가로 병원이 증축되고 있다. 병원장 이 박사와 미군 담당 하옌이 공사 현황과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영상에는 두 사람 모두가 매우 만족한 표정이다. 특히 공사에는 지역 주민들이 직접 고용되어 참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영상을 촬영한 부대는 미 육군성 특별사진과(department of the army special photographic office, SPDP)이며 같은 4과의 웨이드(Wade)가 담당했다. 이 사진과는 1962년에 미국 본토, 파나마, 태평양 등 3개 구역으로 나눠 조직되었고 국방부, 합동참모부, 미 의회 등에 영상을 제공하기도 했다. 특히 이 부대는 대통령 존 케네디(JFK)의 명령에 따라 무한한 권한을 지녔고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확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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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대한원조 프로그램으로 지어진 문산농업학교와 고아원(상광보린원, 박애원)의 모습 /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미군

items/R2 DMZ&판문점/S2 DMZ&MDR/80. 미군대한원조 프로그램으로 지어진 문산농업학교와 고아원(상광보린원, 박애원)의 모습 ,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미군.md

이 영상은 앞의 영상 LC-47511와 이어지며 문산농업학교뿐만 아니라 파주 내 상광보린원과 박애원 건축, 고아원들 모습이 담겨 있다. 앞의 영상과 동일하게 미군대한원조 프로젝트에서 시작된 건축 사업이다. 파주에는 고아원과 육아원 등 15개 이상 소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대부분 한국전쟁 시기 설립되었다고 한다. 1962년 ‘파주린치’ 사건 이후 한미친선협의회 차원에서 미군기지 주변 도시에 소재한 병원 및 학교 등을 건축하는 AFAK(대한군사원조) 프로젝트가 이뤄졌다. 이 차원에서 파주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를비롯한 교사와 금촌민사병원 건축이 진행되었다. 영상에 학교 건물 외에도 농업학교에서 운영하는 소규모 농장이 마련되었다. 이 영상을 촬영한 부대는 미 육군성 특별사진과(department of the army special photographic office, SPDP)이며 같은 4과의 웨이드(Wade)가 담당했다. 이 사진과는 1962년에 미국 본토, 파나마, 태평양 등 3개 구역으로 나눠 조직되었고 국방부, 합동참모부, 미 의회 등에 영상을 제공하기도 했다. 특히 이 부대는 대통령 존 케네디(JFK)의 명령에 따라 무한한 권한을 지녔고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확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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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대성동 자유의 마을

items/R2 DMZ&판문점/S2 DMZ&MDR/103. 파주 대성동 자유의 마을.md

이 영상은 1969년 5월 대성동 마을 일명 ‘자유의 마을’이라고 불리는 전략촌이다. 1954년 2월 3일 귀농선 확정이후 민통선 마을이 생겨났다. 이 시기 군사분계선으로부터 25km 이내에 민통선 지역인 강화, 김포, 파주 등지에는 62개의 자립안정촌(61곳)과 비무장지대촌(1개)이 지정되었다. 자립안정촌은 군의 통제가 비교적 약한 곳으로 입주민은 주로 원주민과 출입경작자를 포함한 이주들로 구성되었으며 마을 출입을 제외하면 일반 농촌마을과 같았다. 비무장지대촌은 자립안정촌과 달리 북한의 선전촌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마을이다. 대성동 ‘자유의 마을’은 비무장지대촌이자 전략촌(Strategic Hamlet)인데 임주조건이 매우 엄격하고 군복무를 필한 사람, 신체 건강하고 영농 능력이 있는 사람, 사상이 건전하고 전과 사실이 없는 사람, 주벽 및 도벽이 없고 채무가 없는 사람이어야 입주할 수 있었다. 전략촌은 1962년 미군에서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의 주민들을 분열시키고자 만들어진 농촌 마을을 말한다. 대성동 마을은 1953년 8월 3일 비무장지대촌으로 지정되었고 1960년 3월 11일 미군에서 대성동 마을 주택 프로젝트의 시찰 및 평가가 이뤄졌다. 주택은 30가구 27평 규모이며 마을 회관은 주택보다 작은 14평이었다. 공사는 한국군 민사과, 미군 공병대 등이 참여했다. 1차 주택공사는 1959년 10월 착공해 미군 군사대한원조프로그램에 따라 학교 건축, 마을회관 등을 건설했다. 영상은 대성동 마을 주택과 마을회관, 마을주민들의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