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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대성동 자유의 마을

숏 리스트 # 슬레이트 06초 : 마을 전경. 기와집. 논과 마을 전경. 지개를 지고 가는 마을 주민과 닭들이 보인다. 한 아이가 닭을 보고 있다. 마을 전경이 다시 보인다. 한 주민이 밭에서 일하고 있다. (1분40초) 주민 들이 마을에서 작업하고 있다. “태권도 연무관 자유의 마을도장” 간판. 마을 전경이 다시 보인다. (2분 24초) 태극기 게양대와 건물, 마을 전경이 다시 보인다.

IDENTITY

Title
파주 대성동 자유의 마을
Media Type
video
Description
이 영상은 1969년 5월 대성동 마을 일명 ‘자유의 마을’이라고 불리는 전략촌이다. 1954년 2월 3일 귀농선 확정이후 민통선 마을이 생겨났다. 이 시기 군사분계선으로부터 25km 이내에 민통선 지역인 강화, 김포, 파주 등지에는 62개의 자립안정촌(61곳)과 비무장지대촌(1개)이 지정되었다. 자립안정촌은 군의 통제가 비교적 약한 곳으로 입주민은 주로 원주민과 출입경작자를 포함한 이주들로 구성되었으며 마을 출입을 제외하면 일반 농촌마을과 같았다. 비무장지대촌은 자립안정촌과 달리 북한의 선전촌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마을이다. 대성동 ‘자유의 마을’은 비무장지대촌이자 전략촌(Strategic Hamlet)인데 임주조건이 매우 엄격하고 군복무를 필한 사람, 신체 건강하고 영농 능력이 있는 사람, 사상이 건전하고 전과 사실이 없는 사람, 주벽 및 도벽이 없고 채무가 없는 사람이어야 입주할 수 있었다. 전략촌은 1962년 미군에서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의 주민들을 분열시키고자 만들어진 농촌 마을을 말한다. 대성동 마을은 1953년 8월 3일 비무장지대촌으로 지정되었고 1960년 3월 11일 미군에서 대성동 마을 주택 프로젝트의 시찰 및 평가가 이뤄졌다. 주택은 30가구 27평 규모이며 마을 회관은 주택보다 작은 14평이었다. 공사는 한국군 민사과, 미군 공병대 등이 참여했다. 1차 주택공사는 1959년 10월 착공해 미군 군사대한원조프로그램에 따라 학교 건축, 마을회관 등을 건설했다. 영상은 대성동 마을 주택과 마을회관, 마을주민들의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Components
  • https://img.youtube.com/vi/uN6c1WK3ipU/sddefault.jpg

CONTEXT

Creators
CROCKETT
Subjects
DMZ
Sources
해당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