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 Collections

Little Switch
Operation Little Switch / VIP / POW EXCHANGE PUSAN
POW EXCHANGE (PUSAN)
Return of Chinese POW
War
War
거제 포로수용소의 포로 교환 준비 과정(활주로 건설, 선전물 번역 등)
거제포로수용소 민간정보교육국(CI&E) 회의 / 포로의 식사와 체육활동
거제포로수용소 전경(병원동, 수월지구 등)
거제포로수용소로 들어오는 북한군 포로 / 미군의 포로수용소 내 시위 진압
거제포로수용소에 방문한 적십자사 인원 / 인공기 게양한 포로 수용동에 최루탄 살포
미군 병사의 샤워 / 포로의 송환 여부 심사
미군포로의 귀환(환영행사, 인터뷰, 덜레스 국무장관)
부산1포로수용소 입소와 위생점검, 식사
부산1포로수용소의 식사, 치료
부상포로교환 작전(판문점)
부상포로교환 작전으로 귀환한 남한군 부상포로
작전명 빅 스위치(Big Switch), 판문점에서의 포로 교환(북한군 포로와 미군 포로)
작전명 빅 스위치(Big Switch), 판문점에서의 포로 교환(터키군 포로, 한국군·미군 포로, 북한군 포로)
전쟁 초기 영등포임시포로수용소와 부산포로수용소로의 이송 / 원주임시포로수용소
제주포로수용소 포로의 송환 수속 준비(포로의 환복, 텅 빈 수용소)
판문점
판문점 이동을 위한 부상포로의 이송(부산항)
포로 감찰대 발대식 / 포로수용소 내 활동(체조, 사열연습, 경극 등)
포로 교환과 관련한 문산역 철도운송 담당 병사의 인터뷰
포로들의 거제도포로수용소 건설 현장(노동 및 취사)
포로들의 연극 활동
포로수용소 내 활동(도서 대출, 식사)
포로수용소 내 활동(조각 등 예술활동, 마작 등 놀이)
포로수용소의 일상과 재교육(철공, 권투, 음악공연, 노역, 한글수업, 조각 등)
포로수용소장 돗트 납치 사건 브리핑과 76 수용동의 모습
포로의 등록 과정(지문 찍기, 사진 촬영, 물품 배급 등)
포로의 포획과 심문, 포로수용소로의 입소 과정
해당없음
해당없음
WAR
부산1포로수용소 입소와 위생점검, 배구하는 모습
포로수용소에서의 미 육군성 군목 보켈의 설교
거제포로수용소로 이송되는 포로들 / 포로수용소 내 활동(목공, 빨래, 운동, 종교활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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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tle Switch

판문점에서의 부상 포로교환 작전인 “리틀 스위치” 작전과 관련된 모습을 담고 있는 여러 영상들 중 하나이다. 전체적으로 부상당한 포로들의 이송 장면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남한의 백선엽, UN군의 클라크(Clark), 맥스웰(Maxwell), 테일러(Taylor) 등의 장성급 지휘관들이 해당 작전을 시찰하거나 언론사와 인터뷰를 하는 모습 역시 눈에 띈다.

video | 6분 49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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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ration Little Switch / VIP / POW EXCHANGE PUSAN

이 영상은 문산리 Little Switch 시 부상자를 실어나르는 헬러콥터와 적십자 버스들에 대한 장면을 담았다.

video | 10분 18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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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W EXCHANGE (PUSAN)

이 영상은 1954년 1월 20일 중국 반공포로들이 트럭으로 이동하고 중간 하역지에서 내려 DDT 살포하고 식사하는 장면을 담았다.

video | 4분 30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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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urn of Chinese POW

중국(대만) 포로들의 송환

video | 10분 43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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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r

중국 반공포로들이 송환을 위해 문산리로 이동하는 장면/ 중국 반공포로들이 문산지역으로 이동하고 유엔 파견단 고문관들이 헬기로 떠나는 장면

video | 6분 13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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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r

중국 반공포로송환협정 싸인하기 전 연설장면과 싸인장면

video | 6분 53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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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포로수용소의 포로 교환 준비 과정(활주로 건설, 선전물 번역 등)

이 영상에서는 1953년 7월 29-30일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의 포로 교환 준비 과정의 일부를 보여준다.

video | 4분 11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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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포로수용소 민간정보교육국(CI&E) 회의 / 포로의 식사와 체육활동

이 영상은 재교육 과정에서 포로수용소 사령부에서 회의 하는 장면과 포로들의 체육 활동을 담고 있다. 영상의 특징은 포로의 재교육 중 체육 활동이 담겨 있다. 체육 활동은 제네바협약에서 인정하는 분야이지만 운동 과정에서 사상 재교육과 연관시켜 운영되었다.

video | 7분46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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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포로수용소 전경(병원동, 수월지구 등)

이 영상은 1952년 2월 8일 거제도포로수용소 64야전병원 전경에서 시작된다. 이어서 야전병원 근처 초가 민가와 거제도 수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면과 포로수용소 건물이 겹쳐 진다. 수월지구 포로수용소 전경(천막과 시멘트로 만든 막사, 수월 지역의 민가)과 미군의 부속건물 등이다.

video | 9분9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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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포로수용소로 들어오는 북한군 포로 / 미군의 포로수용소 내 시위 진압

이 영상은 1953년 6월 19일 거제도포로수용소 내에서 북한인민군 포로들을 호송해 오는 장면과 수용소 내에서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 최루탄을 쏘는 던지는 장면 등을 담고 있다. 이들은 1953년 8월 빅스위치(일반포로교환)직전에 거제도에 수용된 송환을 선택한 포로들이다. 추가 송환 직전 다른 1구역 C와 D수용동에서 포로들이 이동하고 있다. 추가로 이송된 포로들은 다른 구역에 수용되고 있다.

video | 11분02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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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포로수용소에 방문한 적십자사 인원 / 인공기 게양한 포로 수용동에 최루탄 살포

이 영상에서는 1953년 7월 27일 휴전회담 체결 이후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던 공산측 전쟁포로들의 송환과 관련된 장면을 담고 있다. 특히 관련 업무를 시찰하기 위해 거제도에 방문한 적십자 인원들의 모습과 이들의 시선으로 본 거제도 수용소의 모습들이 담겨 있다.

video | 9분 35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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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병사의 샤워 / 포로의 송환 여부 심사

이 영상은 1952년 6월 23일부터 24일까지 송환 여부를 확인하는 장면들이다. 유엔군사령부는 1952년 4월부터 6월 24일까지 부산과 거제도 등지에 수용된 포로들의 송환여부에 따라 수용소 재배치를 실시했다. 북한 또는 중국 송환자들은 거제도, 거제도 저구리, 제주도 국제공항 인근에 이동 재배치했다. 송환을 거부한 북한군과 대만행을 선택한 중국인민지원군 포로들은 부산 내 가야와 서면 일대, 마산, 광주 상무대, 영천, 대구, 논산, 인천 부평, 제주도 모슬포 등지로 재배치가 이뤄졌다. 영상에는 노천에 칸막이를 친 상태에서 미군의 지시에 따라 들어간 포로가 송환과 미송환을 답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하지만 송환심사 과정에서 수용소 내에서 여러 차례 시위와 갈등 등이 첨예하게 대립되었다.

video | 5분35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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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포로의 귀환(환영행사, 인터뷰, 덜레스 국무장관)

이 영상에서는 1953년 7월 27일 휴전회담 체결 이후 빅스위치 작전의 8월 5일자 모습을 촬영한 모습들이 보인다. 귀환하고 있는 포로들, 이들을 맞이하는 미군 장교들, 이 모습을 지켜보러 온 미국의 존 포스터 덜레스(John F. Dulles)의 모습 등이 특기할 만하다.

video | 5분 37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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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1포로수용소 입소와 위생점검, 식사

이 영상은 1951년 2월 16일부터 17일 사이 부산제1포로수용소에서 전쟁포로들을 처리하는 장면이다. 수용소에 들어온 포로들은 위생점검을 받고 전염병 예방 백신을 접종 받았다. 이어서 소독과 새로운 의복으로 갈아입었다. 포로들은 상의, 하의, 신발, 식기류 등을 지급 받은 뒤에 식사를 할 수 있었다.

video | 9분8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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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1포로수용소의 식사, 치료

이 영상은 1951년 2월 22일 부산포로수용소에서 식사와 치료를 받는 포로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제1부산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이 배식 받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 시기 포로들은 점차 거제도로 이송되고 있었다. 포로들은 배식을 받고 주변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부산병원수용소의 건물과 병원에서 수술이 진행되고 있는 장면을 보면 14야전병원에서 포로가 수술을 받는데 동상 환자로 보인다. 의사, 보조의사, 간호사 등 여러 직원들이 환자를 치료하는 장면이 있다. 또한 부산포로수용소에 방문한 국제적십자사 요원이 포로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전쟁 초기 국재적십자 요원이 유엔군 관할 수용소에 방문해 관리 실태, 위생상태 등을 점검해 스위스 본부에 보고했다.

video | 8분14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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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포로교환 작전(판문점)

판문점에서의 부상 포로교환 작전인 “리틀 스위치” 작전과 관련된 모습을 담고 있는 여러 영상들 중 하나이다. “자유의 문”(Freedom gate)를 통과하는 포로들의 모습, 그리스 병사로 추정되는 병사들의 후송 장면, 제45 육군 외과병원 천막 등등의 모습을 담고 있는 짧은 분량의 영상이다.

video | 3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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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포로교환 작전으로 귀환한 남한군 부상포로

판문점에서의 부상 포로교환 작전인 “리틀 스위치” 작전과 관련된 모습을 담고 있는 여러 영상들 중 하나이다. 이 영상에서는 특히 미군 포로 이외에 리틀 스위치 작전을 통해 교환되었던 다양한 국적의 유엔군 포로들의 모습이 많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video | 6분 22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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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명 빅 스위치(Big Switch), 판문점에서의 포로 교환(북한군 포로와 미군 포로)

이 영상에서는 1953년 8월의 빅스위치 작전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상이 촬영된 일자를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영상의 제목에 빅스위치 작전의 마지막 일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video | 5분 32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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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명 빅 스위치(Big Switch), 판문점에서의 포로 교환(터키군 포로, 한국군·미군 포로, 북한군 포로)

이 영상에서는 1953년 8월의 빅스위치 작전의 8월 6일자 작전의 모습을 보여준다.

video | 10분 59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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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초기 영등포임시포로수용소와 부산포로수용소로의 이송 / 원주임시포로수용소

이 영상은 전쟁초기 영등포임시포로수용소와 집결수용소 제2원주임시포로수용소를 담고 있다. 영등포임시수용소는 미군기지 시설 내에 설치되었는데 구 일본군 건물들이며 부상당한 포로들을 이송하는 장면, 121이동병원 내부 등 다양한 장면들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포로들은 영등포임시포로수용소에서 제1부산포로수용소로 열차로 이동해 수용되는 장면이 있다. 열차에서 내린 포로들은 도보로 부산포로수용소에 이동하는 장면과 담보 등 다양한 물품들을 지급 받았다. 이어서 원주 미군기지 내 포로들이 집결해 수용되고 있는 제2원주임시송수용소는 일종의 집결수용소이며 앞의 영등포임시수용소보다 규모면에서 작다. 적십자사 자료에 따르면 원주는 유엔군 제2임시포로수용소이자 이송포로수용소라고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 이 수용소는 1951년 9월 14일까지 운영되었다. “ICRC CAMP REPORT – KOREA”, RG 59, Miscellaneous Records of the Bureau of Public Affairs, 1944 – 1964, Entry A1 1587-G, Box 7, 1952. 7. 23, NARA. 한국전쟁기 포로수용소는 포로집결소, 임시수용소, 지정 수용소 등으로 나눠진다. 임시수용소는 집결소에서 온 포로들을 1개월 이내 수용하면서 포로등록 및 심문 등을 진행하다가 부산이나 거제도 등지로 이송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이 영상의 특징은 영등포와 원주 두 임시포로수용소에서 생활하는 포로와 유엔군 제1부산포로수용소 초기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들 포로수용소는 이념이나 송환여부를 떠나 국가, 계급, 성별만으로 구분해 수용된 곳이다.

video | 7분 40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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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포로수용소 포로의 송환 수속 준비(포로의 환복, 텅 빈 수용소)

1953년 8월 4일자로 제주도 포로수용소에서 송환을 위해 수속을 밟는 포로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

video | 8분 53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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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이 영상은 1953년 4월 17일 판문점 이동병원 천막에서 귀환 미군포로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앞 장면에서 귀환한 미군포로들이 의사와 정보장교들 사이 대화가 이어가고 있다. 또한 의사와 간호장병들이 인터뷰하는 장면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문산리 인근 경비행 활주로가 있다.

video | 10분25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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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이동을 위한 부상포로의 이송(부산항)

이 영상은 1953년 4월 17일 부산항에 부상당한 포로들이 하선하는 장면으로 구성되었다. 부산항에 LST 1096은 부상포로들을 하선시키고 있다. 포로들은 구급차에 실려 부산제2포로수용소와 병원수용소에 일시 수용되었다. 이들은 부산에서 출발해 대구-대전-영등포에 도착했다. 영등포임시수용소에서 부상포로들은 다시 점검을 받고 문산역으로 출발했다. 문산역에 도착한 부상포로들은 자유의 집으로 이동하고 4월 20일부터 5월 3일까지 북이나 남으로 돌아왔다.

video | 11분28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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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 감찰대 발대식 / 포로수용소 내 활동(체조, 사열연습, 경극 등)

이 영상은 1952년 2월 19일 65수용동에서 포로들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행진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포로 중 대한청소년연맹(보이스카우) 결성 장면이다. 이어서 83수용동에서 포로들이 체조하는 장면, 96수용동에서 중국인민지원군 포로들이 연극하는 장면과 관람하는 포로들이 나온다. 또한 86수용동과 교실 장면, 64야전병원에서 의사가 부상포로들을 치료하는 장면이 나오면 간호사(포로출신 여성)이 나온다.

video | 11분21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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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 교환과 관련한 문산역 철도운송 담당 병사의 인터뷰

이 영상은 1953년 4월 14일 파주 문산역 근처에서 철도운송사무소 보급창 담당자 미군의 인터뷰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산역은 부상포로들의 이송과 자유의 마을까지 이동하는 물자 지원, 귀환포로 이송 등 다양한 업무를 담당했다.

video | 4분52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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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들의 거제도포로수용소 건설 현장(노동 및 취사)

이 영상은 1951 5월 14일부터 16일 사이 거제도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이 수용소 일대를 건설하는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video | 10분43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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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들의 연극 활동

이 영상은 1952년 2월 25일 거제도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의 연극을 보여주고 있다. 연극은 현대극과 고전극 두 편이고 수용소의 극장에서 진행되었다. 민간정보교육국에서 마련한 포로들의 재교육 프로그램 중 예술 활동이다. 예술 활동은 연극, 음악, 미술, 공작 등 여러 가지가 기획되었다.

video | 9분42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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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수용소 내 활동(도서 대출, 식사)

이 영상은 거제도포로수용소에서 민간정보교육의 재교육 중 취미 및 예술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video | 5분04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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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수용소 내 활동(조각 등 예술활동, 마작 등 놀이)

이 영상은 거제도포로수용소에서 민간정보교육의 재교육 중 취미 및 예술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video | 6분22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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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수용소의 일상과 재교육(철공, 권투, 음악공연, 노역, 한글수업, 조각 등)

1951년 8월 초의 포로수용소 내의 일상 및 재교육 프로그램의 촬영

video | 9분 7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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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수용소장 돗트 납치 사건 브리핑과 76 수용동의 모습

이 영상은 1952년 5월 7일 거제도포로수용소 소장 프란시스 도드의 납치 사건 직후 국내외 언론사들에게 브리핑하는 장면이고 76수용동 현장을 방문하는 내용이다. 수용소사령부는 사건 발생 직후부터 76수용동에 감금된 도드 소장의 상황, 콜슨 준장의 각서 등을 언론사에 알리고 현장을 방문하도록 허락했다. 특히 포로수용소 소장의 납치 사건은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거제도포로수용소가 중요한 이슈로 등장하게 되었다.

video | 7분39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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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의 등록 과정(지문 찍기, 사진 촬영, 물품 배급 등)

이 영상은 포로들의 등록과정과 재교육에 이용된 각종 영화뉴스 필름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전쟁기 포로등록 매뉴얼은 제2차 세계대전 시기 미군의 독일군과 일본군 등록 매뉴얼에서 시작되었다. 미 육군 헌병대는 1940년에 <전쟁포로 처리 현장 매뉴얼 19-40(FM 19-40)>을 중심으로 한국전쟁 초기에 사용하다가 1952년 5월 1일부터 1949년 제네바협약에 기초해 재수정했으며 11월 3일 재차 수정한 매뉴얼을 사용했다. <FM19-40>에 보면 일반적인 사항, 심문, 포획 방법, 수집 및 이동, 수용소 시설, 송환 방법 등이며 포로처리 관련 헌병중대의 담당 업무 등을 담고 있다. 헌병중대는 전쟁포로처리중대와 호송중대 등에서 담당했다. 일반적인 사항에는 포로들의 포획 직후 몸수색과 포로 소지 물품 및 문서 등을 노획하고 포로집결소로 호송하는 것을 담고 있다. 수용소는 포로집결소, 임시수용소, 정식 본 수용소로 나눠져 있다. 집결소에 들어온 포로들은 포로 번호와 이름 등을 기재한 포로 태그를 목에 걸게 한다. 이어서 포로들은 성명, 계급, 본적, 주소, 소속부대 등을 기재한 개인포로등록 카드에 인적사항을 기재한다. 본 수용소에 이송된 포로들은 소독과 각종 물품들을 지급받고 재차 기본정보 외에 지문등록, 사진촬영(정면, 좌우)에 응한다. 한국전쟁기 포로들은 18만 여명에 달해 포로송환 직전까지 포로등록을 마치지 못했다.

video | 11분35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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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의 포획과 심문, 포로수용소로의 입소 과정

이 영상은 1951 7월 26일 포로들이 포획되는 과정과 이동해 심문을 받고 수용소로 다시 수용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video | 11분15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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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없음

비송환포로들에 대한 군사훈련 장면

video | 9분 8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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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없음

  이 영상은 한국전쟁기 국군과 미군포로들이 서울시내에서 심리전에 이용되는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북한인민군 통신대 병사가 직접 촬영한 것이며 1950년 9월 서울 수복 이후 미군이 노획한 것이다. 특히 영상에 나오는 장면이 실제 스틸 사진이 100여 장 존재하며 연구팀에서 발굴 및 수집했다. 국내에는 국군 및 미군포로 영상이 공개된 사례가 없다. 1950년 7월 중순에 서울 등지에서 포획된 국군 및 미군포로들이 중앙청과 시내 곳곳에 임시수용되었다가 심리전에 이용되었다.   포획된 국군 및 미군포로들은 북한군에 강제 동원되어 ‘미국의 전쟁 개입 반대’하는 시위와 행진 그리고 기자회견 등을 강요받아야 했다. 영상에서 북한군 점령 아래서 서울 시내 모습과 시민들 모습이 담겨 있다.   특히 1955년 라이프지가 미 육군에 전달한 국군 및 미군포로 사진들을 보면 기자회견 외에도 행진과 국군포로 처리 모습, 포획된 포로들이 한강 철교 아래에서 이동하는 장면 등이 나온다.

video | 3분 47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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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R

이 영상은 1951년 8월 5일 북한인민군 포로들이 심문을 받고 있는 짧은 영상이다.

video | 59분44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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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1포로수용소 입소와 위생점검, 배구하는 모습

이 영상은 포로 포획 이후 부산포로수용소에서 다시 포로등록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포로들은 포획된 직후 포로집결소에서 1차 포로등록을 마치고 임시포로수용소에 이송한 뒤 포로심문을 받고 정식 수용소로 이동한다. 그러나 포로들은 정식 수용소 부산포로수용소에서 다시 포로등록을 받는다. 포로등록 이후 포로들은 옷 외에도 밥그릇, 국그릇, 컵뿐만 아니라 칫솔 및 치약, 신발 등을 지급 받았다. 차용한 옷의 앞뒤와 바지에 ‘PW’ 전쟁포로라는 붉은 색으로 표시가 되었다. 수용소에 입소하면 포로들은 머리부터 시작해 온몸에 DDT 소독약을 뿌려졌다. 이어서 포로들은 이발한 뒤 늦은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이처럼 포로수용소에서 포로처리 매뉴얼은 1950년 9월 14일 미 육군 헌병 현장매뉴얼(Field Manual Military Police) FM 19-5와 FM 19-10(헌병작전 매뉴얼) 이 매뉴얼은 1945년 1월 2일 처음 적용되었다가 1947년 4월 8일 개정을 거쳐 1950년 9월 14일 재개정, 1955년 1월 24일 수정되었다. 에 따라 적용되었다. 특히 FM 19-10에는 포로 및 민간인억류자 포획부터 처리규정을 담고 있다. 그 이후 1952년 5월 1일 FM 19-40(전쟁포로처리) 매뉴얼이 등장했다. 이 영상의 특징은 1947년 4월 8일 미 헌병대 작전 매뉴얼(FM 19-10)에 기초해 포로들의 등록과 신체검사, 수용소 조직, 배식 등 포로처리과정을 담고 있다.

video | 10분46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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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수용소에서의 미 육군성 군목 보켈의 설교

이 영상은 1951년 7월 6일 한국전쟁기 민간정보교육국(Civil Information and Education Section, 약칭 CI&E)에서 기획하고 연합군최고사령부(GHQ) 71통신대대 167통신중대 소속 Helms이 포로들의 종교활동을 촬영했다. 1952년 2월 27일 미 육군 전쟁심리전국(Department of the Army office of the chief of Psychological Warfare) 준장 로버트 알렉시 맥클루어(Robert A. McClure)는 “유엔군 민간정보국의 프로그램에서 포로 레크리에이션과 운동경기 등을 포함시켜 심리전에 이용해야 한다” RG 319, Entry A1 154, Box , “Assignment of Responsibility within Department of the Army for POW Reorientation Programs”, 29 FEB 1952. 며 다양한 운동경기를 권장했다. 원래 제네바협약에서 포로들의 기본적인 운동을 명시하고 있지만 재교육이나 심리전에 이용할 수 있다는 규정은 없다. 포로수용소에서 종교 활동은 해럴드 보켈(1898-1975, 옥호열) 선교사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뤄졌다. 보켈은 칼리포니에서 태어나 북장로교에 소속된 선교사이며 1929년 8월 그의 부인과 함께 조선 안동 등지에서 선교사 활동을 하다가 일제의 선교사 강제 철수에 따라 잠시 귀국한 뒤 1946년 안동선교부 재개와 교회복구 사업에 참여하고자 재방문했다. 그 뒤 그는 1950년 9월 미육군성 군목에 임명되어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해 바로 전쟁포로 선교 활동에 나섰다. 10월 29일 평양 서문교회에서 활동하다가 1951년 1.4후퇴 이후 부산과 거제도포로수용소에서 다시 군종에 복무했다. 보켈은 미군 군종사령부와 미북장로교 해외선교부에서 포로수용소 선교의 협조하게 되었다. 1951년 6월 거제도포로수용소에 유엔군 소속 장로교 군목 1명과 카톨릭 군목 1명, 피난민 장로교 목사 4명이 포로선교라는 명목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종만, 「한국전쟁기간 미국 북장로교회 한국선교부의 활동 – 옥호열(Harold Voelkel)선교사의 활동을 중심으로-」, 『이화사학연구』40호, 2010 참조.

video | 6분30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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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포로수용소로 이송되는 포로들 / 포로수용소 내 활동(목공, 빨래, 운동, 종교활동 등)

이 영상은 전쟁포로의 이송, 포로수용소 생활, 민간정보교육의 재교육 프로그램 일부를 담고 있어 전체 3개 주제가 포함되어 있다. 첫 번째 영상 30과 32롤 01초부터 2분 12초 내에서 포로들이 제1거제도포로수용소에 수륙양용주정을 타고 부두에서 내려 이동하고 있다. 1951년 1월부터 거제도포로수용소는 부지 선정 작업과 구역수용소, 수용동 건설 공사에 이어졌고 미군이나 한국군 경비대 숙소가 마련되기 시작했다. 같은 해 3월 이후 부산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이 이송되어 왔다. 영상이 촬영된 8월 5일 시점에서도 여전히 대규모 포로 이송이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수용소 내외와 내부가 부두에서 수용소 사령부와 수용동까지 이어지고 있다. 두 번째 주제인 포로들의 수용소 생활이 담긴 장면이다. 한 포로가 3갤런(약 11.35리터) 드럼을 절단해 빨래판으로 이용하고 있다. 수용소에서 포로들은 직접 구하기 힘든 간단한 도구들을 여러 재재로 이용해 사용하고 있었다. 수용소 사령부가 포로들에게 빨래판을 제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미군 촬영병은 포로가 드럼통을 이용해 빨래하는 장면에 큰 관심으로 본 모양이다. 세 번째 주제인 민간정보교육에서 실시한 포로들의 재교육 장면들이다. 빨래 장면 다음으로 포로들이 운동장에서 배구나 권투, 역기 등 다양한 운동과 천막교회, 83수용동의 학교, 모형 배 만들기 등 직업교육과 사상 재교육, 종교 등 다양한 재교육을 받았다.

video | 6분16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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