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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수용소에서의 미 육군성 군목 보켈의 설교

이 영상은 1951년 7월 6일 한국전쟁기 민간정보교육국(Civil Information and Education Section, 약칭 CI&E)에서 기획하고 연합군최고사령부(GHQ) 71통신대대 167통신중대 소속 Helms이 포로들의 종교활동을 촬영했다. 1952년 2월 27일 미 육군 전쟁심리전국(Department of the Army office of the chief of Psychological Warfare) 준장 로버트 알렉시 맥클루어(Robert A. McClure)는 “유엔군 민간정보국의 프로그램에서 포로 레크리에이션과 운동경기 등을 포함시켜 심리전에 이용해야 한다” RG 319, Entry A1 154, Box , “Assignment of Responsibility within Department of the Army for POW Reorientation Programs”, 29 FEB 1952. 며 다양한 운동경기를 권장했다. 원래 제네바협약에서 포로들의 기본적인 운동을 명시하고 있지만 재교육이나 심리전에 이용할 수 있다는 규정은 없다. 포로수용소에서 종교 활동은 해럴드 보켈(1898-1975, 옥호열) 선교사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뤄졌다. 보켈은 칼리포니에서 태어나 북장로교에 소속된 선교사이며 1929년 8월 그의 부인과 함께 조선 안동 등지에서 선교사 활동을 하다가 일제의 선교사 강제 철수에 따라 잠시 귀국한 뒤 1946년 안동선교부 재개와 교회복구 사업에 참여하고자 재방문했다. 그 뒤 그는 1950년 9월 미육군성 군목에 임명되어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해 바로 전쟁포로 선교 활동에 나섰다. 10월 29일 평양 서문교회에서 활동하다가 1951년 1.4후퇴 이후 부산과 거제도포로수용소에서 다시 군종에 복무했다. 보켈은 미군 군종사령부와 미북장로교 해외선교부에서 포로수용소 선교의 협조하게 되었다. 1951년 6월 거제도포로수용소에 유엔군 소속 장로교 군목 1명과 카톨릭 군목 1명, 피난민 장로교 목사 4명이 포로선교라는 명목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종만, 「한국전쟁기간 미국 북장로교회 한국선교부의 활동 – 옥호열(Harold Voelkel)선교사의 활동을 중심으로-」, 『이화사학연구』40호, 2010 참조.

video | 6분30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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